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이야기/정다방13

정다방 ; 이방인 #1. 역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끼-익하고 힘겹게 들어오는 소리가 옆에서 자고 있는 혜숙이년 이빨 가는 소리 같아 영 달갑지 않다. 용산에서 출발하여 3시간을 달려 도착하는 고속열차는 이곳에서 하루 20번 들고 난다. 매일 나를 깨우는 열차는 아침 7시에 사람들을 태워 내달린 녀석이다. 이른 아침 첫 기차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여 2층 창가에 턱을 괴고 쳐다 보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된 것도 벌써 1년째다. 무거운 상체를 들고, 눈을 수차례 비비적 거리고 내 이부자리를 침범한 혜숙이년 하얀 허벅지를 제자리로 돌려 놓은 뒤에야 이불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혜숙이년은 내가 자려고 누운 새벽 3시에서 1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술에 가득 취해 내 옆으로 파고 들었.. 2009. 4. 10.
그녀 이름 2 #4 밤 9시가 넘어가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한 한풀이로 가득찼던 장례장이 한풀 꺾이고, 가족들만이 주저앉아 손수건으로 눈시울 닦고, 멍하니 앉아 벌어진 입에선 간헐적인 신음이 새어 나올 뿐이다. " 나 화장실 좀.." 적막과 들이마신 술을 좀 깰 겸 일어섰다. 1장례장입구엔 검은 구두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다. #5 '제2장례장' 어쩔 수 없는, 장례식장이라 그럴까? 번호 순으로 이름을 매긴 명패를 보니 가슴 한구석이 씁쓸하다. 슬그머니 '제2장례장'을 들여다 본다. '古 이선희' 영정사진은 보이지 않지만, 부모로 보이는 두분이 절규하고, 할머님이 주저앉아 '선희'라는 이름을 계속 되뇌이고 있다. "선희야, 내새끼..아이고..내새끼" #6 발인날 다시 올 생각으로, 무겁고, 축 처.. 2009. 3. 29.
그녀 이름 1 #.1 침대 밑으로 푸욱- 꺼져 스프링에 온몸이 찔리는 꿈을 꾸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메스꺼운 헛구역질 나는 그런 꿈이 었다. "따르릉-따르릉" 악몽에서 날 깨워준 고마운 전화 저편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달갑지 않은 사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야, 영기.." #2 다행히도, 장례식장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을거란 동물적인 본능에 순순히 따라나섰다. 두집상이 동시에 치러지고 있는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곡과 흐느낌, 허탈함. 그것들을 이기지 못해 술에 뭍매를 맞은 사람들. #3 국밥 한그릇에 홍어전 몇개 집어 먹었더니, 목이 칼칼해 소주병을 땄다. "영식이가 올해 몇살이었지?" "서른하나.." 시원하게 소주를 들이키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영기가 대답한다. "장가도 .. 2009. 3. 29.
강변북로 2월 14일. 오후 4시 수서에서 신촌까지 가는 강변북로에서 본 서울 하늘은 잔뜩 흐렸고, 뿌연 연막이 깔린 듯. 최루탄과 땀이 엉킨 냄새가 난것 같기도 했다. 차 안에서 보이는 서울의 모습과 DJ의 목소리를 빌려 속내를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잘 맞닿았고. 하품이 나오고, 콧물이 말라버릴만큼 고루한 토요일 출근이지만. 신촌에 다와갈때쯤엔 하늘은 카푸치노 우유거품이 되어 있었다. 2009.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