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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파인딩하루키 여행을 다녀오고, <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을 펴내고, 중국, 대만 출간까지 이어지는 와중에 곳곳에서 요청주신 기고글이나 강의 등을 소소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글들도 한 곳에 모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최근에 의뢰받은 글 부터 공유하려고 합니다. 첫 포스팅 글은, 2018년 책의해를 맞이하여 네이버와 문체부에서 진행 중인 활동의 일환인 네이버 포스팅에 기고한 '하루키 덕후의 즐거움'이란 글입니다. (글이 다소 재미가 없더라도 양해 부탁드리며 :D)


네이버 포스트 글 링크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685091&memberNo=42581641&vType=VERTICAL


대학교 4학년 졸업과 동시에 군입대를 앞둔, 2004년 여름 광화문 교보문고 - 14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 정서적인 위안이 되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 한다 - 의 점두 이벤트 매대에는 초록색과 파란색이 눈에 확들어오는 하루키의 10번째 장편 소설인 <해변의 카프카>가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당시 졸업을 앞두고 군대에 가야했던 나는 여름방학 기간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여느 친구들과는 달리 뜨거운 여름 그 자체를 온 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더워서 들어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해변의 카프카>를 보고 바로 상, 하 두 권을 모두 사와서 바로 읽어 내려갔고, 주인공 카프카 소년과 나카타 노인에게 자연스레 나를 이입시키게 되었다. 군입대를 앞두고,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시기의, 무언가 정해진 것이 없던 나는 불안한 미완성인 상태의 두 주인공으로 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근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포함한 하루키의 장편 14편과 단편 95편, 에세이/논픽션 32편 중 베스트 3를 꼽아 보면, 단연 첫번째는 처음 하루키를 만나게 해준 <해변의 카프카>이다. 그의 10번째 장편이고 <태엽감는새>로 작가로서 주제의 확장을 시도한 하루키는 자신감을 얻고, <해변의 카프카>에 그간의 작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역작으로 스스로 평가하는 작품이다. 처음으로 장편에 3인칭을 시도하고, 1인칭과 3인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카프카 소년과 나카타 노인의 교차되는 하드보일드 로드무비를 맛깔나는 문장과 함께 선보인다. <해변의 카프카>가 패러럴 월드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하루키가 비교적 작가 초기 시절 리얼리즘 문학을 시도해 보기 위해 쓴 <노르웨이의 숲> 또한 추천한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지 않고는 하루키를 얘기할 수 없고,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로 올려 준 작품이기도 하다. 와타나베와 미도리와 나오코의 얽힌 각각의 러브 스토리를 따라가는 재미와 함께 삶의 무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영화 <씨클로>로 알려진 베트남 출신 트란 안 홍 감독이 영화화하기도 했다. 마지막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5년에 쓰여진 에세이이고, 하루키가 작가가 되기로 한 시점 부터, 소설을 구상하고 써내려가고 수정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소탈하게 최대한 솔직하게 기술한 에세이로, 하루키 팬이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 그의 솔직함과 작가로서의 근면성, 천재성, 열정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그의 전매특허인 감칠 맛나는 문장은 덤이다. 


2013년 3월 고베 산노미야 '하프타임'


그렇게 하루키팬이 되어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는 전작주의자가 되었다.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탐독한다는 의미의 전작주의자는 자연스레 ‘덕후’라는 단어로 연결된다. 일본 발음으로 ‘오타쿠’인데, 초기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었던게 사실이고, 우리말 ‘덕후’로 순화(?)되면서 요즘엔 덕후들의 노력, 집념이 인정받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그렇게 또 하나의 하루키 덕후가 탄생되었고, 내가 탐독했던 하루키 작품들의 실제 모습과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나타나는 그의 일상 생활 공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첫 직장을 그만두는 시점에 홀연히 일본으로 하루키의 실제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이왕 간김에 짜여진 일정대로 제대로 돌아보고 싶었던 나는, 24일 (기간내 무제한으로 일본내 국영 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JR패스의 최장 기간) 동안의 일정을 한 달 정도 사전 조사를 통해 빈틈없이 ‘파인딩 하루키’라는 타이틀로 준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리 빡빡하게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파인딩 하루키’ 여정이 다른 하루키팬들에게 공유되지 못했을 것이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매우 보람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떠났던 24일간의 여정은 감사하게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고, 하루키 팬들에게 다가가는 가치가 인정되었는지, 중국과 대만에도 번역 출간 되게 되었다. 책을 출간하고 가진 한 강연에서 -파인딩하루키 여정과 하루키 작가에 대해 키워드로 얘기를 풀어보는 크게 2개의 섹션으로 진행되었다 -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는데, 먼저 강연이 끝나고 받은 질문 중 “많은 작가 중 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에 빠지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하루키의 덕후가 된 나에게 있어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었지만,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왜 하루키를 좋아하게되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키를 좋아하게 된 이유 10가지를 꼽으라면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런 몇 가지의 이유 때문에 하루키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해변의 카프카>를 처음 읽고 하루키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고, 그 이후 접한 모든 작품에서 실망한 적도, 읽다 그만 둔 적도 없답니다. 그렇게 하루키의 세계 전체가 저에게 자연스레 흡수되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은 마치, 하루키가 매체와의 인터뷰 중 소설의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며 써 나가냐는 질문에,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이야기가 저에게 먼저 다가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 보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게 사실인 걸. 


파인딩 하루키 여정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을 꼽아 보자면, 먼저 수도고3호선 비상계단이다. <1Q84>의 도입부에 아오마메가 허벅지에 권총을 숨겨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게 되는 소설의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사전 조사에서 소설에서 묘사한 지점에는 비상계단이 없다는 것으로 알고 갔는데, 실제 현장에 가서 소설 속 묘사한대로 그대로 따라가보니 거의 정확한 지점에 비상계단이 있었다, 목에 카메라를 맨 내가 서있는 그 세계가 서서히 소설 속 세계로 바뀌어가는 기분을 온 몸으로 느낀 그 순간을 아직도 있지 못한다. 그 다음이 고베 산노미야에 있는 재즈바 하프타임이다. 하프타임은 하루키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의 주인공 나와 친구 쥐의 단골인 재즈바인 제이스바의 모델이다. 정확히 말하면 실제 모델은 불명 상태이고, 하루키의 중학교 선배인 오모리 가즈키 감독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영화화했는데, 그 영화에서 하프타임이 제이스바로 간판을 바꿔 달고 영화를 촬영한다. 하프타임에는 영화 촬영시 사용했던 땅콩이 들어있는 병과, 영화 화보, 핀볼 기계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하루키의 초기작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에 빠지기 충분하다. 낮에는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는 마스터와 고베대학교 학생 아르바이트가 친절하게 맞이해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강의를 들었던 한 분께서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는 2시간 동안 정말 즐거워 보이셨어요.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그렇게 푹 빠져있다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작가님을 통해 너무 잘 느꼈답니다.”라고 하셨고, 또 다른 분은 “하루키 초기작을 잊고 살았는데, 하루키 초기작을 읽었던 처녀 시절도 돌아간 것 같아요. 저도 작가님의 여정을 따라 직접 가볼 계획이에요.” 이 두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치 단지 하루키 덕후가 떠난 여정이 운 좋게 책으로 출간됐고, 또 어떻게 강의까지 하게 되었다고 수줍어하는 나에 대한 일종의 구원과도 같은 말이었다. 내가 한 덕질이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또 가슴 벅찬 보람도 느꼈다. 


하루키도 덕후의 정도로 치면, 세계 1위를 노려볼 만한 엄청난 덕후이다. 많이 알려진 것이, 해외 문학, 고양이, 재즈 레코드, 달리기 덕후인데, 이런 점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얘기하기도 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보통 패러럴월드로 구성되어,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가 병행 진행이 되는데, 현실 세계에서 주인공들이 먹고, 마시고, 듣는 모든 것들이 매우 세세하게 묘사된다. 비현실과 구분되어 지는 영화 <인셉션>의 토템의 역할도 있는 현실 세계의 묘사는 그가 덕후가 아니면 절대 묘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있는데 바로 티셔츠에 대한 사랑이다. 하루키는 일로 혹은 개인적으로 해외 여행을 다니며 그 도시의 중고레코드샵에 방문해 상한 금액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마음에 드는 레코드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데, 티셔츠 역시 레코드와 똑같이 수집을 한다. 상당한 내공의 덕후가 아닐 수 없다. 


여전히 블로그 finding-haruki.com 을 통해 하루키에 대한 소식과 그의 인터뷰 번역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 지금은 하루키와 관련된 여정이 아닌,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내가 이해 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파인딩 하루키가 B급 여행 이었다면, 이 작업은 ‘하루키 B급 평론’ 정도가 되지 않을까.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아도 모자르는 삶인데, 싫어하는 것, 내키지 않는 것을 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청탁 받은 원고를 넘겼으니, 오늘 저녁 다시 읽기 시작한 내 방 독서대 위에 놓여 있는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맥주 한 잔 해야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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