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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는 하루키의 12 번째 장편 이죠. 1Q​​ 84 출간을 기념하여 요미우리 신문사와 가진 2009 년 인터뷰입니다. <1Q84> 1,2 권을 발표 한 직후 이고요. 2010 년 일본 발간 한 3 권의 존재는 독자들이 모르는 시점의 인터뷰입니다. 감안하고 읽어 주시면 아무래도 느낌이 달라질 수있을 겁니다. (전 그랬거든요. : D) 사실이 인터뷰의 존재는 알았지 만, 전문을 찾지 못 했었는데, 우연히 얼마전 검색을 통해 발견 한 보물 같은 인터뷰입니다. 그간 나온 하루키의 인터뷰도 실려있는 <잡 문집>이나, 국내에는 발간되지 않았지만, 그의 인터뷰 18 편을 실은 <나는 매일 꿈을 꾸기 위해 일찍 일어납니다>에도 실리지 않은 인터뷰입니다. 신문에는 3 편에 걸쳐 진행되었고 요, 포스팅은 역시 집중도를 위해이어서 진행 할게요. 원문에는 신문 기사 답게 흐름을 잡고 읽어 나갈 수 있도록, 각각의 소제목이 있답니다.


Foto: Dominik ButzmannHaruki


1Q84의 세계 (상, 중, 하)

하루키 2001 년 PW  인터뷰


[달의 뒤편에 남아있는 것 같은 공포]


요미우리 : 먼저, 하루키 씨의 이번  새 장편은 <1Q84>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을 바탕으로, 가까운 과거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예전 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또 하나가 옴진리교 였죠. 옴진리교가 일으킨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언더그라운드>와 <약속된 장소에서>를 발표하고, 그 이후에도 도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을 다니면서 가해자들의 재판을 계속 지켜봤어요. 특히 옴진리교의 간부이자 테러 당시 실행범으로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하야시 야스오의 재판이 궁금하여 계속 관심을 가졌습니다. 일본의 양형 기준과 유가족의 분노와 슬픔을 생각하면, 사형은 타당한 판결이라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전 사형 제도에 반대하고, 1심에서 사형이 판결되었을 때 뭔가 답답한 심정이었답니다. (역주: 옴진리교 사건의 주 실행범인 간부 10여명은 모두 2012년 최종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인간이 여러가지 요인으로 무거운 죄를 짓고 깨달았을 때에는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사형수가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달의 뒤편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것이 자신의 일인 것 처럼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해 몇 년 동안 계속 생각해왔답니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었어요. 


[현대의 시스템]


요미우리 : 그렇게 완성된 <1Q84>는 말씀하신대로 인간의 고귀함과 동시에 인간의 깊이를 알 수없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게되는 작품 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판단 시스템에 의해서는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죠 . 법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판단을 가져 가려해도, 계속되는 상황이 바뀌게되는 재심에 의해 역시나 불분명 해지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무라카미 씨의 이전 논픽션 인 도쿄 사린 테러의 당사자들과 인터뷰 한 <언더 그라운드> 나 <약속 된 장소에서>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루키 : 옴진리교 사건은 현대 사회에서 '윤리'란 무엇인가라는 커다란 문제를 우리 앞에 내밀었다고 봐요. 우리는 옴진리교를 바라보는 양쪽의 시선에 각각 직면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올바른 의견, 행동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한 쪽면만 봐서는 파악해 낼 수 없어요. 죄를 짓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얇습니다. 가설 속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가설이 있죠. 체제 속에 반체제가 있고, 반체제 속에 체제가 있습니다. 이런 현 사회의 시스템을 소설 속에서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 이름을 붙이고,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그들을 조형했습니다.  


[새로운 리얼리즘]


요미우리 : 모든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아픔이 있고,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매력적이죠. 달이 두 개 뜨고 초현실적인 '리틀 피플'이나 '공기번데기'도 등장하면서, 현시대의 영화나 게임을 통해 CG 영상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에게도 위화감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루키 : 내가 지금 있는 세계가 진짜 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 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9.11 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만들어낸 영상 처럼 소멸했어요. 그토록 어이 없는 붕괴 장면이 몇 번이나 영상으로 보여지고 있는 가운데,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그 무너진 건물이 없는 이상한 세계 속으로 자기가 비집고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지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 그런 다른 세계가 여기는 아닌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편 일본인들은 1995년에 연달아 일어난 한신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을 통해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현실에서의 괴리감을 다른 세계 보다 한 발 빨리 겪었다고도 생각해요.


제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을 제외하면, 이른바 리얼리즘 소설은 아니지만, 9.11 이후 전 세계에서 제 작품들을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동시에 전 발자크 같이 세속적인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묘사하는 작품을 좋아하고, 이 시대의 세태 전체를 입체적으로 그려, 제 나름대로는 '종합 소설'이라는 형태로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순수 문학이라는 장르를 넘어 다양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많은 이야기의 소재가 담겨진 '서랍'을 확보하여, 지금 시대의 공기 속에서 인간의 살아가는 의미, 가치들에 대해서 대입해 보고 싶었다고 할까요. 


[시간을 품고 성장하는 이야기]


요미우리 : <1Q84>에서는 학생 운동에서 파생된 정치적 그룹과 자급자족하는 그룹으로 분열되어 후자의 그룹이 컬트 교단인 '선구'로 변모하게 되는데요. 이런 배경은 일본 현대사의 실제 사건도 언급됩니다. 


하루키 : 우리들의 세대가 1960년대 후반 이후 어떤 경로를 따라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우리 세대는 결국 마르크시즘이라는 대항 가치가 생명력을 잃은 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일으켜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죠. 무엇이 마르크시즘을 대체할 수 있는 좌표축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모색하는 가운데 컬트 종교와 뉴에이지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리틀 피플'은 그런 작업의 하나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독자의 최대 수수께끼]


요미우리 : 선구의 집단지인 야마나시에서 선구의 리더의 딸로 등장하는 후카에리가 본 '리틀 피플'의 존재가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가지는 최대의 수수께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루키 : 신화적인 아이콘으로 옛날 부터 존재해 온 것이고, 언어화 할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비현실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신화라는 것은 역사 또는 사람들의 공동의 기억에 내재되어있거나 특정 상황에서 갑자기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죠. 예를 들어 <태엽감는새>와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게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이기도 해요. 또는 그것은 단순히 우리 자신 안의 무언가일지모 모릅니다. 원리주의의 문제도 포함됩니다. 전 세계가 혼란해지는 가운데, 간단한 원리는 오히려 확실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머리 속에 어떤 사물을 생각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를 빌려 스스로 생각한 마음을 단순화 시키죠. 이런 간단한 원리가 관계 형성을 쉽고 확실하게 만들어 줍니다. 과자는 빨리 우리 몸 속에서 에너지화 되지만, 몸에 좋다고는 말할 수 없잖아요. 스스로의 힘으로 정신성을 높이는 작업이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해요. 


요미우리 : 시장원리주의의 세계화와 함께 정보화도 진행되었는데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여 정보를 얻는 것은 주어진 정보에게 조종 당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하루키 : 확실히 지금 세계는 1984년과는 전혀 다릅니다. 워드 프로세서는 있었지만, 집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있다면 도서관에 찾아갔죠. 휴대 전화도 없기 때문에, 공중전화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죠. 그리고 지금은 블로그에서 모두가 무책임하게 의견을 내고, 익명의 악의가 금새 네트워크를 통해 집결하게 됩니다. 지식과 의견이 쉽게 붙여져서 네트워크를 돌아다닙니다. 속도와 함께 그런 것들을 선별할 수 있는 이해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2월 예루살렘상을 수상하러 이스라엘에 갔을 때, 인터넷에서 반발이 고조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반발들을 살펴보면 제가 상을 수상하거나 수상을 거부하거나하는 흑과 백의 이원론만 존재하고, 제가 현지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어요.     


[작가의 역할]


요미우리 :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벽과 달걀'에서 개인의 영혼의 존엄성을 비춰 거기에서 빛이 나게 하기 위해 소설을 쓰겠다고 하셨죠. 


하루키 : 작가의 역할은 고착된 원리주의와 그것들의 일종의 신화성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시작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야기'는 남아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이고 합당한 마음 속에서 받아들여 진다면 말이죠. 예를 들어 '벽과 달걀'의 이야기가 제 아무리 감동적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처한 각자의 상황에서 그 모두에게 다 받아들여지진 않을겁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죠.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통째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갑니다. 즉효성은 없을지 모르지만, 시간을 품고 시간과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의견'이 넘쳐 돌아다니는 시대이기에, '이야기'는 불필요하다고도 생각되어질 만큼 그 힘을 가져야 합니다. 


태제와 메세지가 표현하기 어려운 영혼의 부분을 알기 쉽게 언어화하여 즉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소설가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글로 제대로 다진 후, 작품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통째로 인도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독자가 작품을 읽으면서 제가 말로 하지 못한, 그 숨은 의미를 발견해주면 그것 만큼 기쁜 일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책이 얼마나 팔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는가라고 믿습니다.     


[교차 전개되는 이야기]


요미우리 : 스포츠 클럽에 근무하는 미혼 여성 아오마메와 소설가를 지망하는 수학 교사인 덴고, 이 두사람의 이야기가 1,2권 각 24장씩 교대로 진행됩니다. 한편, 스토리 전개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처럼 매우 독창적입니다. 


하루키 : 바흐의 평균율 쿠라비아 곡집의 형식을 가져와 장조와 단조와 같이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를 번갈아 전개하자고 마음먹었었죠. 그 전에 주인공 이름이 필요했겠지만요. 어떤 때에, 불현듯 '아 아오마메가 좋겠다'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주점의 메뉴에 '풋콩(아오마메) 두부'가 있었는데 그것에서 연상되었던 것 같아요. 덴고라는 이름도바로 뒤따라서 나오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아, 이제 다시 소설을 시작해야할 때가 왔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2년 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쓰면서 완성에 대한 확신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어요. 


가장 먼저, 10살에 만나 헤어진 30세의 남녀가 서로를 찾아헤매는 이야기를 하자라고 생각하고, 그 두 남녀 주위의 이야기를 가급적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내기 위해 복잡한 전개가 된 것 같아요. 2006년 가을 하와이에 머물면서 처음 시작을 했는데, 처음 소설을 쓸 때 머릿속에 있던 건 이 정도였어요. 제 경우에 그 이후의 줄거리를 미리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잘 안풀려요.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작은 이미지 정도는 떠오르는데, 그 외에는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둡니다. 이야기의 대략적인 맥락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2년 동안이나 쓰고 앉아 있고 싶지는 않아요.   


[나이와 작품]


요미우리 : 이번 작품은 무라카미씨 장편 최초의 3인칭 소설입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에 가까운 무라카미씨 작품 특유의 친밀감은 유지되고, 등장하는 젊은 주인공들은 비난 받기 쉽고 아름답습니다. 30년간 작품 활동을 해오시면서 계속되는 젊은 주인공들의 역동성은 역시 무라카미씨 작품은 청춘문학이구나라는 것을 재확인했다랄까요. 


하루키 : 작가는 보통, 나이가 들면 작가 본인의 연령대의 이야기를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독자도 작가와 함께 해를 거듭해가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런데 전 현재를 살면서 앞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있어요. 물론 현재 20대와 교제도 없고 모바일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작품은 전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실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쓴다는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같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 제 나이가 30살이었죠. 그 때는 30세의 자신 밖에 잘 쓸 수 없었지만, 53세에 쓴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15세 소년을, 그로 부터 2년 뒤인 <애프터 다크>에서는 19세 소녀에 제 자신을 투영했어요. 이번에는 10세의 아오마메의 마음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여성의 사고 방식이나 생각들을 더 깊이있게 써 보고 싶었답니다. 오랜 기간 매일 소설을 써나가고 주인공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 '그런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알아가게 됩니다. 몇 번이나 수정 작업을 거쳐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씩 바꿔나갑니다. 한 단어의 선택, 한 행의 묘사의 수정으로 주인공이 일어날 수 있어요.  


[폭력과 성(性)]


요미우리 : 덴고를 매료시켜 나가는, 컬트 교단 선구를 탈출한 소녀인 후카에리나 아오마메 모두 성적(性的)으로 대담한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간이나 가정 폭력의 소재들은 현대 사회 오늘의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고요.  


하루키 : 초기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1973년의 핀볼>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작품을 거듭할 수록 폭력과 성이라는 문제는 저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섹스는 두 사람의 영혼의 깊숙한 곳에 다다르는 중요한 문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을겁니다.  <태엽감는새>에서는 사람의 살갗을 벗기고,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고양이의 목을 자르는 잔인한 장면이 묘사되지만, 이번 소설은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섹슈얼한 장면이 

꽤 등장합니다. 싫어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저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요미우리 : 2권이 9월로 끝나는데요. 속편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루키 : 어떻게 될까요. 이후 얘기는 천천히 생각하고 싶습니다.


[미국 소설과 거리]


요미우리 : 1,000페이지의 장편도 강인한 문체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챈들러의 문장을 '치밀한 가설과 디테일의 주의 깊은 통합'이라고 무라카미씨는 평가하셨는데요. <1Q84>에도 그런 문장들이 보여지는 듯 합니다.


하루키 : 7년전이네요. <해변의 카프카>를 쓰고, 챈들러의 작품을 시작으로 고전들을 다시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했답니다. 챈들러의 <롱굿바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등의 번역을 했죠. 멋진 작가들의 멋진 영어 문장을 어떻게 일본어로 옮겨야 하나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작가이지만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번역가로서의 책임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어떻게든 노력해서 번역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답니다. 대신, 현 시대의 미국 소설과는 조금 멀어지게 되었죠. 다른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지낼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 리얼리즘 소설에도 한 번 도전해보았는데, 그걸로 꽤 편해졌다라고 할까요.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철저하게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가 다시 써 내려간 것이고요. 시드니 올림픽을 보고 매일 기록한 <시드니!>도 문장을 쓰는 좋은 수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쓰고 싶은데 기술적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다라는 것은 상당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요미우리 : 현 시대는 비쥬얼적인 표현이 너무나 고도화되어, 단어의 힘만으로는 새로운 표현을 개척해나가는 일이 예전에 비해 더 어려워진 건 아닐까요?


하루키 : 작품을 하나 하나 해 나가면서, 제 나름의 새로운 언어 시스템을 개발해 왔어요. 이번에 3인칭으로 쓴 것도 장편 소설에서 새로운 표현 방법을 시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랍니다. 결과적으로 작가적인 시작, 혹은 제 세계가 더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매우 기뻤죠. 언어는 누가 읽어도 논리적으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객관적 언어'와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적 언어'로 이루어져있다고 비트겐슈타인이 정의했죠. 사적 언어의 영역에 발을 붙이고 거기에서 메세지를 꺼내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이 소설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적 언어를 객관적 언어와 잘 융합시키면 소설의 말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이야기는 입체적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세파교류전 처럼요(웃음) (*세파교류전 일본의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의 교류전)


요미우리 : 독자의 측면에서 볼때도 언어 능력을 기르는 것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1985년 작품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계산사가 살고 있던 그 닫힌 불편한 세계가 바로 현대 사회를 예간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루키 : 컴퓨터의 발전은 새로운 계급사회를 낳으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리하지만, 그 뒤에서는 프로그래밍을 하는 많은 지적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전문화 속에서 건전한 창의력이 퇴보해나가는 세계를 그린 조지 오웰의 <1984> 속 세계와 같이 변해갈 우려가 있다고 봅니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공통 언어로서의 영어 없이도 많은 일들을 해나갈 수 있지만, 한편으로 다양한 국가의 문화적 특이서을 대신하는 시스템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대에도 핵심적인 지적인 영역을 담당하는 소수의 예를 들면 5% 정도의 사람은 반드시 있고, 복사-붙여 넣기가 횡행하는 시대에도 예술적인 관심과 독창적인 사고와 스타일 등은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유로움 추구]


요미우리 :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의 명성도 요동치고 있습니다.


하루키 : 전 미국의 신문이나 잡지에 매우 신뢰를 보내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미국 언론의 정부를 옹호하는 극단적인 논조에 그런 미국 언론들이 힘과 신뢰를 잃고 있다고 생각해요. 출판사도 많이 기울었고요. 이제는 미국과 유럽, 동아시아간의 차이가 줄어들어, 문화적 상호작용은 더욱 번창하고 더 등가적인 것이 될것이라고 봐요. 이번에 <노르웨이의 숲>을 영화화하는 트란안홍 감독 같은 경우,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감독이기에 영화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미우리 : 전 세계에 무라카미씨의 독자가 아주 많습니다. 그들은 일본과 일본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 일본인이라고 한정 짓는 것 보다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을지 생각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소위 말하는 '일본인론'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여전히 일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하나로 단정하기 보다는 자유로움을 추구 하고 싶습니다. 해외 언론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로 작품을 쓰는 저의 특수성을 넘어 세계의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메세지는 반드시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답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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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14 12:26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