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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통신/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15년 5월 교도 통신 인터뷰(2) - 작가관을 말하다

finding-haruki.com .
 
 

하루키가 교도 통신과 가진 15년 5월 인터뷰 두번째 편입니다. 1편에서는 원전 문제 부터 동아시아 역사 문제까지 동일본 대지진 및 원전 사고 이후 사회 참여적인 발언의 강도와 횟수를 늘리고 있는 최근 하루키 행보의 연장선상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1편에서는 현 정세에 대해 그리고 2편에서는 하루키의 본업이죠. 작가로서의 그의 작품과 다음 장편에 대한 힌트도 남겼답니다. 작품은 최근 작품인 <여자 없는 남자들>의 '키노'와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냈습니다. 인터뷰 보시죠!  (원문은 인터뷰어인 교도 통신 편집자가 하루키와의 인터뷰를 간접인용하며 회고하고 있지만, 편의상 포스팅은 직접 인용으로 바꿨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Source: Sipa Press / Rex Features

 

 


교도통신: 이제 무라카미씨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죠. 독자와의 질문 사이트에 "무라카미씨는 신화를 쓰고 계신건가요?"라는 질문에, "전 세계의 신화에는 많은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어요. 많은 부분이 언어와 문화를 뛰어 넘어 의식의 밑바닥에서 연결되어 있어요" 라고 답장을 쓰셨죠.

 

하루키: 그런 의식의 이면에 대한 부분을 쓸 때는 처음 부터 어떤 계획을 세우고 쓰기 시작하면 안됩니다. 숲 속에 가만히 앉아 짐승을 바라 보며, 그 짐승의 움직임을 따라 내 자신의 움직임도 서서히 만들어 갑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무의식, 잠재의식이 발현되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가게 됩니다. 숲 속에서 짐승의 움직임을 가만히 따라가는 듯한 이야기의 흐름은 신화의 이야기의 움직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신화는 인간의 공통의 잠재의식을 형성한 것이고, 제가 쓰는 이야기는 저의 잠재의식으로 내려가는 일이에요. 그런데 계속 잠재의식으로 내려가다보면 어느 순간 인간 공통으로 형성되어 있는 잠재의식과 만나게 되겠죠. 신화와 개인적인 이야기는 물론 다르지만, 그 흐름과 의식의 운동은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교도통신: 무라카미씨는 독자와의 상담에서 미국 신화학자인 조지 캠벨(1904~1987)의 저서인 <신화와 함께 하는 삶>과 <신화의 힘>을 명저로서 독자들에게 추천하셨죠. 

 

하루키: 네 조지 캠벨은 세계의 신화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는 학자이나 작가로서 저도 그로 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교도통신: <1Q84> 출간에 맞춰 나온 계간지인 <생각하는 사람> 롱인터뷰에서도 조지 캠벨의 책을 꼽으셨고, '신화의 재창출'이라는 명제로 이야기를 풀기도 하셨는데요.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세계 공통의 의식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메세지로 해석했습니다. 신화는 그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보시는 건 가요?

 

하루키: 네 맞아요. 

 

 교도통신: 다른 계간지 <Monkey>에 연재 하고 계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쓸 당시 에피소드도 들려주셨죠.

 

하루키: 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기 시작했을 때, 당연히 일본어로 쓰기 시작했죠. 그런데 중간 중간 다시 읽어 보면 뭔가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영어로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일부분 영어로 쓰기 시작했죠. 외국어로 글을 쓰고 싶을 때는 가급적 심플한 구문과 문장을 구사하고, 그것이 쌓이면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요. 그렇게 저만의 문제가 만들어 졌다고 할까요. 저와 비슷한 예로 <악동일기>로 잘 알려진 헝가리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1935~2011)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헝가리를 떠나 스위스로 이주했죠. 그리고는 프랑스어를 배워 프랑스어로 글을 썼죠. 


수식어를 쓰지 않고 간단한 단어, 단문으로 글을 점점 쌓아나가면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져요. 일종의 하나의 신화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일을 아고타 크리스토프도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비슷한 방식으로 저도 외국어를 매개로 하여 새로운 일본의 문체를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작업 중에 하나는, 일종의 기존 '문예 시스템'이라는 틀 속에 스며들어 있던 언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본어 단어를 시작으로, 새로운 문학의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것도 있답니다.  

 

교도통신: 지난해 출간된 무라카미씨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단편들이 '뉴요커'에 실리고 있는데요. 2월달에는 단편 <키노>가 실렸습니다. 

 

하루키: <키노>는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도 탈고에 많은 시간을 걸린 작품이에요. 저에게는 어려웠다고 할까요.  

 

교도통신: '키노'는 주인공 이름이죠. 그는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온날 아내가 외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떠나 아오야마에서 친척이 경영하던 가게를 인수해 '키노'라는 이름의 바를 열고 조용히 지냅니다. 

 

하루키: 키노는 말이죠.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도 아파하지 않아요. 분명히 상처는 있지만, 그 상처를 느끼지 못한다랄까. 그 깊이를 알 지 못한다랄까. 무감각한 채 인생을 보내고 있는 인물이에요. 아내에 대한 분노, 그 과정에서의 상처를 덮어 버린 거죠. 하지만 그 뚜껑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해요. 그것이 이 이야기의 무서운 점이에요. 

 

교도통신: 자신이 직접 뚜껑을 닫아 외면해 버린 것들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거군요. 

 

하루키: 그럼으로서 다가 오는 아픔이 또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과 직면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다시 회복해 나간다는 점이에요. 그런 고독, 단절감, 두려움을 거치고 나서 '재생'이 찾아오는 겁니다. 이 '재생'이라는 측면이 가장 중요하죠. '재생'의 메세지가 없으면 소설로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픔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키노의 삶은 어떻게 보면 쿨하고 멋지다고 볼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게만 해서는 살 수 없어요. 

 

교도통신: 키노가 이모와 나누는, 뱀의 출현과 신화 속에서 뱀이 갖는 의미, 역할에 대한 대화도 인상적입니다. 많은 신화 속에서 뱀이 등장해 주인공들을 어디론가 이끌죠.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직접 따라나서기 전 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였죠.

 

하루키: 키노는 아내에 대한 분노가 없더라도 다른 쪽으로 아픔을 겪을 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이를 통해 키노는 다시 재생하게 됩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이것이 제가 키노를 통해 주고 싶은 메세지에요. 부정적인 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일들도 똑바로 명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뱀의 출현은 부정적인 것을 직면하고 들여다 보라는 뱀이 키노를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요.

 

교도통신: 말씀하신 그런 부분에서 무라카미씨의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신화적인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이 작품은 뉴욕 타임즈가 집계하는 베스트 셀러 양장본 부분에서 1위를 하기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소설의 마지막 쓰크루가 학창시절 친구인 쿠로를 만나러 핀란드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루키: 핀란드는 제게 '지하'로 가는 느낌이 있어서 설정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핀란드에서도 최대한 북쪽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미국으로 해서는 절대 이런 느낌이 나오지 않아요. 

 

교도통신: <다자키 쓰크루>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5명(여자 2명, 남자 3명)이 대학 진학을 하면서 흩어지고, 대학교 2학년 때 쓰크루가 그들로 부터 절교를 당합니다. 매우 가슴아파하지만, 36세가 되기까지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 오던 쓰크루는 어느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 떠납니다.  그런데 시로는 이미 죽었고, 쿠로는 핀란드에 살고 있고, 남자 친구였던 아카와 아오만이 나고야에 살고 있죠. 소설 마지막 쓰크루가 쿠로와 포옹하는 장면은 꽤나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쿠로는 시로 처럼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루키: 물론 쿠로는 살아있습니다. 그렇지만 쿠로는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사람, 저쪽 세계로 가버린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제가 핀란드를 '지하' 즉, '잠재 의식', 저 쪽 세계'라는 의미로 설정한 것과 같은 의미로서 말이죠. 시로(흰색)는 죽었고, 쿠로(검정)도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 쪽으로 물러서 있는 거라고 봐요. 

 

교도통신: 즉, 남자 3명만이 살아있는 세계로군요. 쿠로는  "쓰크루 너는 아오와 아카를 만나는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너희들 셋이 다함께 만나던지"라고 조언을 합니다. 

 

하루키: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교도통신: <노르웨이의 숲>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레이코씨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와타나베가 레이코씨를 만나 죽음의 이미지를 경험하고 재생의 힘을 얻듯이 다자키쓰크루도 쿠로를 만남으로서 다시 살아갈 재생의 힘을 얻는 건 아닐까요. 무라카미씨의 작품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들고 다시 사람을 위로하는 재생의 메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키: 그런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보통의 메세지를 전하는 기본적인 소설을 쓰고 싶어요. 하지만 그런 근원적인 이야기들로만은 좀 처럼 전해지지 않는 것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원전 문제나 테러 문제,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적인 이슈 등이 그에 포함될 것 같습니다. 인간 근원적인 이야기들과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싶습니다. 작가로서 시대적인 책임도 마음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 장편은 이런 제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혼돈의 시대에 인간 공통의 의식을 다루는 신화적인 이야기를 그 만의 문체, 언어, 스타일로 새롭게 구축해 나가고 싶고,  그 바탕위에 시대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더이상 묵시하지 않고 이야기를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겠다는 하루키의 강한 의지를 엿 볼 수 있었던 인터뷰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로소 다음 장편 작업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네요.




 

댓글
 
   
 
  • 무명 키노를 여자없는 남자들의 작품들중 제일좋아하는데 자세한얘기를 들을수있어 좋네요~핀란드의 의미가 저런것이었군요.. .
  • finding-haruki.com 네 그렇죠. 하루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니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게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랄까요. :D .
  • 손님 앗 우연히 검색하다가 (하루키에 대한) 들어왔는데
    보물창고같은곳이네요
    감사합니다 ^.^
    .
  • finding-haruki.com 자주들러주세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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