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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딩 하루키 여정의 원고 작업으로 한동안 포스팅이 뜸했습니다. 책은 <하루키를 찾아 가는 여행>이란 제목으로 4월 20일 나옵니다! 탈고 기념 포스팅 나갑니다. :D 이 인터뷰는 2006년 미국 계간지 퍼블릭 스페이스 창간호에 하루키의 번역 작업과 초반에 미국 문화에 대한 가벼운 비평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출간된 하루키의 13개 인터뷰를 엮은 <매일 꿈을 꾸기 위해 일찍 눈을 뜹니다>라는 책에도 실린 인터뷰입니다. 우연히 원문을 발견하게 되어 소개해드릴게요! *인터뷰어는 롤랜드 켈츠 도쿄대 국제학 교수이며, 하루키와 평소에 친분이 있는 분 같습니다.


사진 출처 http://blog.jeremysuttonhibbert.com

 

하루키의 주요 번역 작품으로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시작으로 트루먼 카포터,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미칼 길모어의 <마음에 박힌 총상>, 존어빙의 <곰 풀어주기>, 팀오브라이언의 <The Nuclear Age; 그래도 살고 싶다>, 그레이스 페일리 <Enormous Changes at the Last Minute>,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마크 스트랜드의 <Mr. and Mrs. Baby> 등이 있습니다.


하루키 퍼블릭 스페이스 인터뷰 (원문 링크) 

-2006년 퍼블릭 스페이스 VOL 1. 


롤랜드 켈츠: 무라카미씨와 저는 요전에 일본에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죠. 그게 얼마나 외로운가에 대해서도 함께 말이죠. 


하루키: 네. 그건 여전히 어려운 문제에요. 그런데 최근 10년에 걸쳐 그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 과감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도 잘 알다시피, 제 학창 시절에는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거나, 어느 사무실이나 대학교에 들어가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성장했죠. 매우 타이트한 사회라고 할 수있어요.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는 속하게 되어있었던거죠. 하지만 전 그렇게 되는걸 원치 않았어요. 가능한 빨리 대학으로 부터 독립된 삶을 살고 싶었죠. 그리고 그것은 외로운 일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요즘 세대를 보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바로 프리랜서가 됩니다. 거기에는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이 있겠죠. 그러나 전 좋은 면이 더 많다고 봐요. 그건 개인 스스로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롤랜드 켈츠: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은 미국 문화를 여전히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자국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요즘 친구들은 아시아나 유럽 쪽으로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더이상 미국이 '온리원'인 상황은 아닌거죠. 제가 10대였던 60년대만 해도 미국은 거대한 존재로서 모든게 빛이 나고 눈부셨어요. 제가 15살 생일 때, 고베에서 아트 블래키 앤 재즈 메신져(Art Blakey and the Jazz Messengers)의 공연을 처음 봤었는데, 그 공연으로 재즈라는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됐죠. 매우 강한 인상을 받으며 감동했어요. 당시는 정말 미국 문화의 최고 정점을 이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롤랜드 켈츠: 무라카미씨 외에 다른 일본 사람들도 당시 미국 문화에 매력을 느꼈었나요?


하루키: 그럼요. 압도적이었죠.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을걸요? 제 기억이 맞다면 1962년 혹은 1963년 이전에는 일본에 자몽이란 과일이 없었어요. 한 번은 제가 미국 소설의 번역본을 읽는데, 각주에 자몽에 대해 설명을 해 놓은 걸 읽은 적이 있었죠. 그리고 피자도, 햄버거도 당시에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대학 생활을 했던 1970년대에 들어와서 일본에 처음으로 맥도날드가 생겼죠. 우리는 맥도날드에 가서 어떤 햄버거를 먹을까 고민하곤 했죠. 


롤랜드 켈츠: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무라카미씨에게 긍정적인 경험이었나요?


하루키: 물론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인이 아니에요. 당시 우리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죠. 1970년도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봤던 기억이 있어요. 굉장한 경험이었죠. 그 영화가 당시 찬란했던 미국 문화의 정점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롤랜드 켈츠: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많이 바뀌기도했죠. 그렇지 않나요?


하루키: 음, 글세요. 그즈음 미국은 두 가지 면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강한 힘의 나라란 측면과 젊음, 혹은 반문화적인 측면이 그거에요.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1965~1973)을 비판했지만, 여전히 지미 헨드릭스나 도어스를 들었죠. 당시 미국은 전세계인들이 우러러 보는 문화와 그 외의 것들을 적절히 균형을 잡아가고 있었다는 느낌이네요.


롤랜드 켈츠: 현재는 어떨까요?


하루키: 어떤면에서 그 유지되어왔던 균형이 깨진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대부분의 일본인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도 알겠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코카콜라를 즐겨 먹지 않아요.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료는 전통 보리차에요. 


롤랜드 켈츠: 일본인들은 자국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그들이 자기 나라에 대해 얼마나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이상 수입되어지는 미국 문화에 대해 무조건 추종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요즘 미국 락 음악은 무뎌졌고, 상업적으로 치우쳐졌고 지루하기까지 해요. 할리우드 영화 처럼말이죠. 젊은 일본 친구들은 일본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J-POP을 즐겨 듣는 것 처럼 말이죠.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J-POP은 형편 없다고 생각해요. 일부 애니메이션 처럼요. 그러나 여전히 좋은 음악은 있기 마련이죠. 전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 좋은 음악들에 친근감을 느끼고요. 


롤랜드 켈츠:  최근 미국 소설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아, 여전히 인기있죠. 신기하게 말이에요. 지난 20년간 미국 작가들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20대였을 때에는 도날드 바설미와 존업다이크와 같은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포스트 모던 작가들의 두 진영이 있었죠.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존어빙, 레이먼드 카버, 팀 오브라이언의 3가지 흐름으로 나뉘게 되었죠. 당시 카버의 소설을 읽고 기절할 뻔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롤랜드 켈츠: 카버의 어떤면이 그랬나요?


하루키: 그 어떤 작가도 카버 같은 이야기를 쓰지 않았어요. 상식선을 넘지 않았죠. 그러나 그는 항상 간단한 어휘를 사용하며 간단한 이야기를 썼어요. 유머 감각과 건조함이 어우러진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는 음산한 결말로 넘어갔죠. 그의 이야기는 일상 생활에서 이루어집니다. 전 단편 소설을 쓸 때 카버로 부터 많은 부분을 배웠어요.


롤랜드 켈츠: 카버로 부터 어떤점들을 배웠나요?


하루키: 당신이 단편 소설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지적인 능력이 발휘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주제까지는 지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배웠어요.


롤랜드 켈츠: 무라카미씨가 번역한 다른 작가들, 예를 들어 존 어빙으로 부터는 어떤점들을 배웠나요?


하루키: 존 어빙으로 부터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배웠어요. 제가 번역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고 말할 때, 그것은 작은 것은 아니지만, 실제적인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은 꽤 큰 겁니다. 저자의 호흡, 관점, 감각 등 번역을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어요. 당신도 알겠지만, 옛날 사람들은 좋은, 재밌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만들어냈잖아요. 예를 들어, 일본 사람들은 고대 소설인 '겐지 이야기' 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만들어 내고 후세에 전하게 했죠. 반복하는 즉 일종의 복사(따라)하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해줄거에요. 그건 다른 사람의 신발에 당신의 발을 넣는 것과 같은 거죠. 번역도 같은 것입니다. 

 

 롤랜드 켈츠: 무라카미씨는 일본의 다른 전문 번역가로 부터도 배우나요? 예를 들어 시바타 모토유키(1954년생, 미국 문학 연구자, 번역가) 씨의 번역본도 읽어 보시나요?

 

하루키: 그럼요. 시바타씨의 번역 작품도 정말 좋아해요. 그러나 시바타씨와 저는 약간 다른 맛이랄까요. 시바타씨가 작업한 폴오스터, 스티브 에릭슨, 스튜어트 다이벡, 스티븐 밀하우저 이 작가들도 물론 훌륭한 작가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전 이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할 마음은 들지 않아요. 어떤 것이든 좋겠지만요. 시바타씨와 전 이렇게 번역하는 작가들에서 서로 충돌하지 않죠. (웃음) 제 생각에는 시바타씨는 소설의 균형을 중시하는 것 같아요.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요. 전 시바타씨의 번역본을 읽을 때 마다 문학 속에서의 세계가 균형이 잘 잡혀있다는 느낌을 받곤해요. 폴오스터가 좋은 예에요. 마치 바흐의 음악 같아요. 엄밀한 수학 공식 처럼 진행되죠. 당신은 에릭슨이나 밀하우저도 같은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죠. 이들 작가들은 모두 그들의 상상력에 의해  멋진 세계를 구성하지만,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때때로 우리 주위는 미치고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시바타씨의 작가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죠.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흘러가며 심지어 금욕적이기까지 해요. 물론 이 방법이 작품을 호평 받게 할 수 는 있다고 생각해요.

 

반면, 카버와 오브라이언의 경우에는 때때로 모든 것이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죠. 전 이런 어지러운 혼돈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종류의 세계를 더 선호합니다. 그런데 당신도 알다시피, 제가 오브라이언의 <The Nuclear Age>를 번역했을 때, 만나는 미국 사람들 모두 그 책은 오브라이언의 최악의 작품이라는 말을 했죠. 하지만 전 그 소설이 좋았는걸요. 팀 오브라이언을 만났을 때, 전 그에게 번역을 했다고 말했죠. 그러자 그가 의심의 눈초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당신이 정말 그걸 번역했어요?!"

 

롤랜드 켈츠: 일본에서 그 작품의 번역은 무라카미씨가 유일하죠?


하루키: 네. 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많은 독자들이 그 작품을 좋아합니다. 때때로 전 미국 독자들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롤랜드 켈츠: 어떤 것들을 놓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하루키: 당신도 알겠지만, <The Nuclear Age>는 대중적 인기를 노릴만한 소설은 아니에요. 소설의 균형이 없죠. 매우 무질서하고 불완전합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이런 불완전할지라도 중요한 메세지가 있는 책에 대해 감사히 여기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어요. 


롤랜드 켈츠: 무라카미씨가 생각하시기에, 미국인들은 그들의 기대 혹은 예상에 대해 보수적인 것 같나요?

 

하루키: 전 때때로 미국 독자들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곤 해요. 뉴욕 타임즈 북리뷰가 그걸 도와주고 있죠.


롤랜드 켈츠: 요즘 미국의 젊은 작가들 중 번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작가가 있나요?


하루키: 위에 제가 언급했던 카버, 오브라이언, 어빙 외에는 아직까지 번역을 하고 싶은 새로운 소설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걸까 궁금하긴 하네요. (웃음) 전 번역 분야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에요. 전 소설을 쓰는 작가죠. 전 번역 작업을 통해서 무언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을 습득하길 원할 뿐이에요. 작가로서 나름대로의 확실한 지점에 일단 올라서면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고 무언가를 배우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젊은 작가들 보다는 고전을 통해서 더 많이 배우곤 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나 <호밀밭의 파수꾼>은 여전히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죠. 


롤랜드 켈츠: 무라카미씨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저에게 처음 얘기했을 때는, 열린 세계(민주주의와 자유, 다원주의)와 닫힌 세계(제어와 조작, 억압)사이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죠.  


하루키: 네 맞아요. 그리고 요즘 상황을 보면 닫힌 세계의 힘이 많은 곳에서 더 강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당신은 근본주의자와 컬트 종교 단체, 군대에 둘러쌓여 있어요. 그것을 당신의 팔로 부셔버리지도 못하게끔 되어있죠. 그들의 시스템은 영구히 살아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모든 알카에다 병사들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그들의 닫힌 시스템, 사상은 계속해서 살아있어요. 그들은 단지 장소를 옮겨서 계속 꿈틀댈겁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열린 세계의 좋은 점을 보고 밖으로 표출해야 한다는 거에요. 그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열린 세계의 오픈된 회로는 폐쇄된 세계의 회로 보다 더 오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롤랜드 켈츠: 왜 닫힌 세계의 회로가 계속 뻗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지금의 세계는 매우 혼란스럽죠. 당신은 스톡옵션과 투자한 산업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어떤 랩탑을 구매할지도 진지하게 고민하죠. 그리고 당신의 디지털 티비에는 54개의 채널이 있죠. 당신은 인터넷 상에서 원하는 대부분의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 모두는 복잡하고 그래서 당신은 그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닫힌 세계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는 순간, 당신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문가 또는 독재가가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를 알려주니까요. 너무 간단하고 넘어가기 쉬운 유혹이죠. 많이 배웠다고 하는 지식인들도 1995년 도쿄 사린 테러를 저지른 옴진리교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한 번 닫힌 세계에 발을 들이면 결코 빠져나오지 못할 겁니다. 문이 닫히거든요. 


롤랜드 켈츠: 그러니까 이 두 세계 - 열린 세계와 닫힌 세계 - 사이의 긴장감을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느끼셨다는 말이죠?


하루키: 맞아요. 이 소설을 읽은 건 39년전인 고등학생 때가 마지막인거 같아요. 스토리를 대부분 잊어 버렸지만, 번역을 하기 위해 다시 읽었을 때 마음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죠. 미국 사회의 정신적인 병말이에요. 미국 사회의 만성 질환이죠. 그건 작가의 마음의 짧은 여정이라고 생각되지만 샐린저 작가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 소설은 존레논과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들이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죠. 그의 작품은 사람의 어두운 면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호밀밭의 파수꾼>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훌륭한 소설이지만, 샐린저 작가 스스로는 그 자신만의 닫혀진 세계에 매우 근접했던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물론 소설가로서 열린 세계에 존재하지만, 그의 마음만은 닫힌 세계의 이야기를 더 중시한다는 느낌이랄까요. 결국 두 세계는 궁극적으로 서로 대립되지만 양면성을 가지고 공존하게 됩니다. 많은 독자들은 이 소설을 사회 체제에 대항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로 생각하죠.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에요. 그는 자신의 오른쪽과 왼쪽을 저울질 하면서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앞으로의 모든 시간을 바꾸게 되죠. 그 부분이 저로 하여금 오싹하게 만드는거에요.


롤랜드 켈츠: <호밀밭의 파수꾼>을 번역하고 나서도 그 생각이 계속 이어지셨나요?


하루키: 네. 그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어두운 바닥까지 내려간 듯한 느낌이었죠.


롤랜드 켈츠: 좋은 느낌으로서였나요?


하루키: 네 그래요. 전 그 책을 번역할 때, 샐린저와 함께 그 어둠의 바닥으로 내려갔어요. 때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로 힘이 들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번역가로서 작가로서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롤랜드 켈츠: 스콧 피츠제럴드 작품 번역을 통해서는 어떤 것들을 배우셨나요?


하루키: 전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 위해 25년을 기다렸어요. 80년대 초반 일본에서 헤밍웨이는 매우 인기가 있었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렇지 않았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번역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는데, 당시는 자격이나 능력이 받쳐주질 않았죠. 


롤랜드 켈츠: 번역을 하고 난 이후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하루키: 처음 번역하기 전에 읽었을 때는 <위대한 개츠비>는 '완벽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줄 한 줄 번역을 해나가면서 이 소설은 불완전한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한다는데에 마법이 있다고 느꼈어요. 긴 문단은 일관되게 흘러가지 않으며, 캐릭터들이 그들의 일관되지 못하는 상황을 확실하게 표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이런 결함들이 축적되면서 이뤄진겁니다. 그때까지는 단지 불완전한 존재라는 정도까지로만 표현되었다면, 이 소설 이후 불완전의 표출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의 한 종류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것은 아마 제가 일본에서 번역 출간하지 않았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롤랜드 켈츠: 몇 년 전 무라카미씨는 1995년 고베 대지진과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 이후 일본으로 귀국한 것과 피츠제럴드가 1930년에 파리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것을 비교하며 말씀하시기도 하셨죠. 


하루키: 일본의 버블경제는 미국의 1920년대 대공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1995~2005)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아직도 이 시기를 완전히 극복했다는 어떤 신호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전 귀국 후 이 시기 동안 개인적으로 일본인 소설가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이 시기에 하루키 스스로 가장 혼신을 다했다고 말하기도하고, 평단의 호평을 받기도 한 <해변의 카프카>가 쓰여졌죠.) 그 10년 동안 저의 테마는 우리의 일상이 세계의 혼란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제 그 10년 동안의 테스트의 결과물을 보여드릴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FIN.


인터뷰 말미 10년간의 테스트의 결과로 쓰여진 작품이 <1Q84>로 볼 수 있겠네요. 평단과 독자의 반응은 많이 엇갈렸지만, 하루키가 말한 일상과 혼란의 공존이라는 테마의 테스트는 일단 "가능하다!"라고 긍정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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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06 14:15

    비밀댓글입니다

    • finding-haruki.com 2014.07.08 22:50 신고

      안녕하세요 댓글이 늦었습니다..이미 해결해드리려해도 늦었겠습니다만..아쉽게도 포스팅에 링크에 걸려있는 주소가 저도 알고 있는 전부에요..따로 번역을 위해 저장해 두지 않았답니다..죄송하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