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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발표하고, 5월 교토대 강연을 하고 다시 작가와 일상 생활인으로 돌아간 하루키의 2003년 당시 아오야마사무실에서 진행된 여행작가 Martin Amanshauser와의 인터뷰가 10년이 지나 오스트리아 일간지 디프레세에서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해변의 카프카>가 일본에서 출간된 직후네요. 디프레세지는 '역사적인 인터뷰의 풀 공개'라고 부제를 달았습니다. :D 인터뷰어인 작가는 인터뷰를 꺼리는 하루키를 만나기 위해 행운이 따랐고, 40여통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새로운 인터뷰 내용이 있을지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간 포스팅 했던 것 중 가장 긴 인터뷰로 질문이 40개가 넘는데요,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한 포스팅으로 이어가겠습니다. 


디프레세 인터넷판 원문


당신은 프란츠 푹스를 아십니까?
하루키 2003년 오스트리아 일간지 '디프레세' 아오야마 사무실 인터뷰


Q1. 음악가 닉케이브는 공무원 같이 아침에 차를 운전하고 가야하는 곳에 사무실을 임대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한다고 하네요. 무라카미씨도 비슷한 상황이신가요?


하루키: 닉케이브란 음악가를 잘 모릅니다. 최근에 팝음악을 잘 못듣고 있습니다. 저는 사무실 뿐 만아니라 주중에는 도쿄 시내에서 살 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도쿄 외곽(오이소)의 집으로 가곤 하죠. 저는 매우 이른 시간에 일어나요. 보통 새벽 4시경에 일어나죠. 왜냐하면 혼자 있을 때 가장 최적의 일하는 환경이 마련되기 때문이에요. 제 어시스턴트는 11시에 출근합니다. 그때는 이미 그날의 써야할 부분들을 대부분 완료한 상태이죠.


Q2. 커트보네거트는 작가의 두 타입이 있는데, '남자'는 디테일한 부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술해 나가고 '여자'는 아이디어와 아이디어만으로 가이드를 만들어 나간다고 했습니다.


하루키: 저는 소설을 쓰기전에 그 어떤 구조나 계획이 없이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것이 여성 작가만의 특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 방법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동안 새로운 스토리를 떠올려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요. 스트레스라고까지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Q3. 그런 방법이 모든 것을 설정해 놓는 것 보다 쉬운건가요?


하루키: 항상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저의 경우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할까요. 그 방법이 제가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제가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가이드가 되고, 스토리라인이 아이디어를 따라갑니다. 이 것이 저를 글을 계속 쓸 수 있게 리드하는 방법이에요.


Q4. 저는 지금까지 대부분 30대에 첫 소설을 쓴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왔는데요, (29살에 데뷔하신) 무라카미씨의 초기작품 중 당혹스런 일을 겪었던 일이 있었나요? 


하루키: 아니요. 저는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29세의 나이에 첫 소설을 썼고, 신인 문학상을 타고 대중들에게 선보이기까지 했죠. 이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 볼 수 없어요. 그때 이후로 쓴 작품 모두가 발표되었습니다. 


Q5. 십대 시절, 작가가 되고 싶다란 꿈이 있었나요?


하루키: 대학교에서 글쓰는 것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빨리 포기해버렸죠. 글쓰는 것에는 재능이 전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29살때 특별한 무언가가 제게 일어난 느낌이었어요. 갑자기 쓸 수 있겠다라는 자연스런 충동을 느꼈고,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그게 전부에요.


Q6. 무라카미씨는 이전 부터 번역일도 함께 해오셨나요?


하루키: 네, 번역은 제 취미에요. 전 학창시절 부터 영어로 된 소설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리고는 일본어로 번역을 해보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훈련이었네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시작으로 번역을 해오고 있습니다.


Q7. 무라카미씨의 초기 작품을 읽었을 때, 당신이 리차드 브로티간의 작품을 많이 읽고 영향을 받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루키: 네 정확해요. 20대 대학시절 전 리차드 브로티간과 커트 보네거트의 팬이었어요. 그들은 저의 영웅이에요. 그들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죠. 그런데 지금까지 그들 작품 중 하나씩만 번역했네요. 


Q8. 다른 작가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영감으로 볼 수 있고, 또한 당신의 작품 속에서 그 영감들을 표출하나요?


하루키: 네. 저는 제 자신의 작품을 씁니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제 작품 역시 일종의 책임을 요구 받습니다. 그러나 제 취미인 번역하는 일은 그렇지 않죠. 번역은 많이 할 수 있지만, 제 일인 소설을 직접 쓰는 것은 그렇지 못해요. 그러나 즐기고 있습니다.


Q9. 무라카미씨 자신의 글 쓰는 작업이 번역에도 도움이 되나요?


하루키: 음, 아마 때때로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나 조금 신경은 쓰이죠. 번역은 순수하게 흥미와 취미로서만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죠.


Q10. 그것은 무라카미씨가 (번역하는 작품의) 각 이슈에 대해 이론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하루키: 잘모르겠어요. 하나는 최대한 쉬운 방법으로 표현하는 거죠. 당신 자신의 책은 언제나 스스로의 이기적인 과정에 의한 산물이죠. 당신이 정말 좋은 책을 번역한다면, 당신의 자아가 죽임을 당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또한 그 정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다른 작가의 생각에 접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죠. 다시말해서, 번역을 하는 동안 당신은 완벽하게 당신의 마음으로 부터 떠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저의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에겐 일종의 치료와도 같죠. '번역 치유'랄까요. (소설을 쓰면서) 언제나 제 자신의 마음 속만을 읽으려고 힘을 빼는건 짜증나는 일이거든요.


Q11. 일부에선 당신을 현대 일본인 작가 중 가장 미국인들에게 어필하는 '미국인 작가'라는 얘기를 하지만, 저는 또한 무라카미씨가 같은 맥락에서 '유럽 작가'라고도 생각합니다.


하루키: 그런가요? 당신도 알겠지만 전 다독가에요. 어린 시절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걸신들린 듯이 읽어 나갔죠.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푸쉬킨. 특히 두꺼운 책은 저에게 많은 것들을 주었어요. 모든 독서를 좋아하지만, 특별히 '총소설(Total Novel)'을 좋아합니다. 미국 문학을 얘기하자면, 순수한 오락, 하드보일드 미스테리, 과학 소설들이 었죠. 또한 유럽으로부터 온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소설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일본 문학에 있어서는 좋은 독자가 되지 못했죠. 왜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 부모님은 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문학을 가르치셨는데, 저는 부모님이 자신들의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추천하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 독서 스타일을 굳이 표현하자면 '중립적인' 스타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전 일본에 살고 있고, 일본 사람임을 잊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화'되어 있다는 말을 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Q12. 당신의 표지 디자인이 훌륭한 두 작품 <태엽감는새>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정상적인 이야기의 이면으로 들어갑니다. 두 작품은 소위 말하는 '하위 세계', '지하 세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 같은데요. 무라카미씨는 카렐 차페크나 사무엘 버틀러 작가로 부터 영감을 받은 건가요. 아니면 기본적으로 당신이 만들어낸 지하 세계 문학인가요.


하루키: 그 소설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이야기에요. 그는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지하 저승세계로 내려가죠. 인류는 예전 부터 살고 있는 표면 아래 다른 현실, 세계가 있다고 믿었죠. 지금 저 역시 그것을 믿습니다. 물론 메타포(은유)로서 말이죠. 지금 이 세계에서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을 상상해 보세요. 지하실이 있고, 1층이 있고, 2층이 있죠. 하지만 제가 믿는 신념은 그 지하실 아래에 또다른 저장고가 있다는 거에요. 만약 우리가 정말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하면 우리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 소설에서 이런 제 신념의 구조를 집어 넣게 되죠.


Q13. 이런 설정은 소설 <댄스댄스댄스>의 양사나이가 머물로 있는 돌핀 호텔에서도 등장합니다.


하루키: 맞아요. 그곳은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장소이자, 저 스스로에겐 매우 흥미있는 곳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만의 특별한 어두운 방이 존재해요. 그것은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그 특별한 어두운 방에 대해 쓸 때, 거의 모든 독자들 역시 그들만의 어두운 방에 대해 인식을 할 것이라고 믿어요. 


Q14.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유럽인들의 (사회적, 인종적)편견 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들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전 제 스스로나 일본에서 그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그런 편견이 없어진 상황이 생겨나게 되었죠. 덜 모순된 사회가 편견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요?


하루키: 전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런 사회 계급 체계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사회적 계급이 존재하는 곳은 사회가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같은 계층(인종)의 사람들끼리 몇 번의 눈 깜빡 거림으로 같은 부류의 사람임을 알아차리죠. 그러나 이곳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다고 생각됩니다. 당신이 말하기전까지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이네요. 제가 지하철로 이곳 사무실로 올 때,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자연스럽게 지하철에 타고 책을 읽고 목적지로 갑니다. 저 스스로 A에서 B로 이동한다는 개념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Q15. 무라카미씨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런 편견으로 부터 자유로운 캐릭터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직업을 갖고, 따뜻하며 사람을 대할 때 책임감을 다하며 그들의 감정에도 역시 책임을 다합니다. 그래서 소설 속 화자와 작가와 심하게 혼동이 되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댄스댄스댄스>의 고탄다 같은 시니컬한 캐릭터 역시 당신의 프로토타입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당신이 소설 속에서 두가지의 타입을 구성한다면, 당신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캐릭터 속에서 만나게 되나요? 


하루키: 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 새 작품 <해변의 카프카>에는 15세의 어린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매우 외롭고, 힘든 상황이며 동시에 매우 순수한 소년입니다. 이것이 제가 시도한 새로운  (1인칭과 3인칭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는)1인칭 시점의 소설입니다.


Q16. 작가는 그의 인생에서 단 하나의 책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고들 말합니다. 작가의 숨겨진 작품이나 자신의 작품이 아니더라도요. 그런 의미에서 무라카미씨는 당신의 캐릭터 중에 스스로 인식을 많이 하며 써내려간 인물이 있나요?


하루키: 음, 글세요. 어렸을 때, 제가 읽었던 책속의 나레이터는 적어도 저의 또 다른 자아로서 기능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쓸 때는 내가 소설 속의 '그'라면 어떨까 상상을 하곤 해요. 그런데 문제는 저는 '그'가 아니란 거에요. 캐릭터는 제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고, 재미와 흥미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제공하는 저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저는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해야했죠. 왜냐하면 저는 점점 나이가 들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54세이지만, 저의 주 독자층은 2~30대이죠. 저는 그들의 부모 세대에 속하게 되는 거죠. 제 그림자로서의 주인공을 묘사한다면, 그 주인공은 제 독자들과 점점 거리가 생겨버리는거죠. 그래서 젊은 독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와 독자들의 세대를 교환하는 거죠. 이것은 또한 도전입니다.


Q17. 그들은 또한 무라카미씨의 부모세대와도 같은 방법으로 교환을 했을까요? 당신은 부모 세대와 관계는 어떠했나요? 혹은 지금 현재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하루키: 부모님은 현재 멀리 교토에 살고 계시죠. 난 부모님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요. 전 아이가 없습니다. 아이가 있으면 다른 어떤 그룹에 속하게 되어 버리죠. 제 와이프와 저는  거의 고립된 우리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어요. 



Q18. 무라카미씨는 앞으로 또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쓸 생각이신가요? <태엽감는새>에 나오는 병사의 피부를 모두 벗겨내는 잔혹한 장면이 나오는 소설 같은 것 말이죠.


하루키: 과거에 대해서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하게 됩니다. 기업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세계 역시 급격하게 다른 세계가 되어가곤 합니다. 그래서 전 이렇게 변해가는 새로운 세계에서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기억해 둔채, 새로운 현대적인 주인공을 만들어야 해요. 제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전쟁에 참여하셨어요. 그는 자주는 아니고, 많이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계속 전쟁 이야기를 들려 주었어요. 그렇게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태엽감는새>에 투영이 되었던 거죠. 물론, 소설 속 그 사건은 허구입니다. 제가 모두 생각해 낸 거에요. 그러나 그 이미지는 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형성되었고, 현재도 쓰고 있는 거죠. 저는 그런 '이야기'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 속에서도 마찬가지죠.


Q19. 저의 나라인 오스트리아는 과거에 대해 자주 말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일본과 같이 '과거'를 제대로 되찾지 못한 비슷한 상황이 있습니다. 


하루키: 명백하게, 현재에 있는 우리는 미래와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에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Q20. <노르웨이의 숲>에서의 와타나베는 당시 60년대 학생 운동의 주역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는 매우 현명하고 냉담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런 설정은 당신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 만들어 낸 것인가요, 무라카미씨가 실제로 당시 정치적인 활동을 했던 것인가요?


하루키: 네 저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저의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 후에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그룹이나 단체를 믿지는 않았어요. 저는 그 어떤 정당이나 정치적 연합의 멤버였던 적이 없어요. 저는 당시 학생 운동에 대해 동정을 느꼈어요. 그러나 전 외톨이였죠. 내가 무슨일을 할 수 있을까. 전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지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이것이 제 스타일이었죠. 맞아요. 전 <노르웨이의 숲>의 화자인 주인공을 정말 좋아했어요.


Q21. 개인주의자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그 자신의 꿈에 직면하게 될 것 같은데요. 어떤 꿈이 무라카미씨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나요?


하루키: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상으로서 작용합니다. 그 당시 전 이상주의자였어요. 당시의 학생 운동이 전쟁과 같이 크게 번지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당시의 운동이 지금의 진보(progress)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맞아요. 당신이 느낀 것 처럼 당시엔 젊었으니까요.


Q22. 꿈은 무라카미씨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곤 합니다. 실제 생활 속에서 좋은 꿈을 꾸시나요?


하루키: 아니요. 전 꿈을 꾸지 않아요. 제 기억엔 한 달을 넘겨 1번 정도인 것 같아요. 왜 그런지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친구 중에 테라피스트가 있는데, 그가 말하길 제가 꿈을 현실에서 소설로 쓰기 때문이라고 했었어요. 그렇다하더라도 저는 원래 꿈을 잘 꾸지 않는 것 같아요.


Q23. 심리 요법으로서의 꿈인가요?


하루키: 저는 깨어있으면서 꿈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소설가가 하는 일 아닐까요?


Q24. 혹자는 당신의 소설을 읽으면, 문학이라는 생각 보다는 삶이라는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무라카미씨는 문학 보다 실제 삶에 더 관심이 있으신가요?


하루키: 집필을 하는 동안은 이것이 문학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소설 속 이야기 그 자체에 집중을 하죠. 주인공들도 그 이야기 속에 속속 나타나고요. 그 이야기의 문학적인 질의 높고 낮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가 문학적으로도 좋은 것이기를 원합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가치와 표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는 상상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우리 안의 중요한 무언가를 만질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일상 생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문학이라는 것에는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당신은 소설 속에서 이것을 할지 저것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전 그런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자연스러움이 저에게 중요합니다. 그것은 자발적이어야해요. 저의 가장 자발적인 작품은 1995년 3월 20일 발생한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로 희생된 60명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작품이에요. 그리고 또한 오움진리교의 멤버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구술(oral), 인터뷰 방식에 대한 접근은 유럽의 분석적인 접근이라고 당신은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Q25. 정말인가요?


하루키: 네. 전 이 프로젝트에 강한 영감을 받았어요.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개성적인 프로젝트입니다. 단순히 사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의 모음입니다. 저는 소설을 씁니다. 일반적인 사실과 수치들은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들이죠. 그렇게 되면 진실에는 관심을 두기 어렵게 될 수 있죠. 하지만 본질은 분명히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을 위한 일이었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글세요, 이것이 유럽의 개인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제 방법입니다.


Q26. 하지만 무라카미씨는 소설가로서 그 어떤것도 만들어 낼 수 있죠.


하루키: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스토리텔러는 아마츄어에요. 그들 대부분은 무언가에 효과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죠. 그리고 간결하게 표현하지도 못해요. 그러나 전 그들(사린 사건 인터뷰이)을 위해 이것들을 할 수 있죠. 그래서 전 2~3시간 동안 그들을 인터뷰했어요. 매우 긴 녹음 테이프가 만들어졌고, 음성을 기록형태로 바꾸는 일 또한 방대했죠. 그리고 책으로 엮기 위해 텍스트를 선정하는 일에는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했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왜곡이 없는 상태에서 간결하고 읽기 쉽도록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그리고 신선하게 그들 스스로 현재의 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것은 예술이었어요. 이 작업을 하면서 너무 좋았고, 재미있고 박진감 넘쳤죠. 이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Q27. 인터뷰어들의 상태는 평온했었나요?


하루키: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겁니다. 전 그들을 위해 요약하고 모순되는 상황을 바로잡아 정상적이고 유기적인 대화가 이어지도록 했죠. 그들은 제가 이렇게 중재하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을 거에요. 그들은 이런 저의 방식을 쉽게 받아들였다고 생각됩니다.


Q28. 당시 피해자 인터뷰어와 아직도 관계를 맺고 있나요?


하루키: 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즈코 아카시란 당시의 사건으로 기억을 잃은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7~8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었죠. 그녀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녀는 거의 아무것도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많이 나아졌고, 이제는 스스로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 도중에는 제 얘기가 점점 많아 졌었죠. 전 그녀를 더 이해하기 위한 조그만 과정이었을 뿐이에요. 7~8년전 일어난 한 사건 때문에 불행히도 한 마디 말을 하기 위해 7~8년이 고스란히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점점 괜찮아 지고 있고, 작년에는 그녀의 오랜 꿈이었던 도쿄 디즈니랜드에도 다녀갔다고 했습니다. 정말 기쁜 소식이었죠.


Q29. 그녀의 기억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건가요?


하루키: 네 그녀의 기억은 완전히 되돌아 오지 않을거에요.


Q30. 오움진리교의 사린테러를 주모하고 실행한 일부 사람들은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오움진리교의 교주인 쇼코 아사하라는 많은 일본인들을 불현하게 만들면서 이렇게 재판 결과가 없이 길게 이어지고 있나요? (인터뷰 당시는 사형 확정 판결 전임)


하루키: 아마도 그의 사형 선고는 올해 아니면 내년이 될 것입니다. 그는 완벽하게 미친 사람입니다. 사린 테러에 가담한 오움진리교의 지도층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Q31. 재판은 계속 진행되고 있나요?


하루키: 지금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까지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만, 2년안에 결정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길게 지체되었다고 해서 형이 경감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간의 관심이 사라져도 제가 계속 법정의 재판을 주시할겁니다. 


Q32. 만약에 이상한 재판부의 판단으로 형이 경감되면 어떨까요?


하루키: 개인적으로 사형 제도에는 반대의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오움진리교 가해자들은 그들의 범죄에 대한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실의 바탕에서 그들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현상 위에 놓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사형시키면 이 정보와 지식들이 그들과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그렇게 해버리면 우리 사회는 보복 만을 하는 재생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린 테러로 목숨을 잃었고, 자연스레 죽음으로써 그 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33. <언더그라운드>의 독일 버전은 희생자와 오움진리교의 교단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한 책자에 묶여서 출간되었는데요. 


하루키: 일본에서는 희생자들과의 인터뷰 책자가 먼저 나오고, 1년 뒤에 오움진리교 교단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책자로 나왔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모두 1권으로 출간되었어요. 한 권으로 출간하면 어떤 효과가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두 인터뷰가 각기 다른 책입니다. 그 분리된 것에 대해서는 만족합니다.


Q34. 우리는 오움진리교를 얘기할 때 일본의 민간 종교인 신도와 다른 여러 종교의 요소들을 가지고 기괴한 방식으로 수련한다는 정도를 얘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왜 그런 종교에 심취하는지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데요. 오움진리교의 어떤 매력에 빠진 걸까요?


하루키: 간단히 말해서, 많은 포장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잡아 줄 무언가를 은연 중에 바라고 있습니다.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오래된 종교는 그런 그들에 의해 믿어지기 시작하고 굳건해 졌습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야 합니다. 피라미드의 최상부에 자리잡은 구루(흰두교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구루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을 거두어 갑니다. 오움진리교가 처음 생겼을 때, 이런 완벽한 시스템을 도입했죠. 교단에 들어가면 모두가 더이상 생각할 수 없고, 더이상 자신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가입한 사람들을 위해 밑부분 부터 전체적인 경험을 하게 할 수 있게 짜여져 있죠. 완벽합니다. 그리곤 구성원들에게 동시에 만족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회는 엉망이고 복잡하여 사람들에게 간결한 무언가를 제공해 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 속에 살고 있고, 혼자 외롭게 걱정을 하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Q35. 오움진리교의 1~20명의 살인자들은 몇 백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종교를 믿는 자들은 그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종교의 위대한 요소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신조에 의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현상들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믿고 있습니다. 


하루키: 가장 중요한 점은 시간입니다. 기독교는 2천년간 유지되어 왔죠. 이것은 정말 긴 시간이에요. 불교는 더 길죠. 이슬람은 그 보다는 조금 짧고요. 분명한 것은 오움진리교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을 촉발시켰죠. 그러나 위대한 종교는 그들 구성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함께 해왔다는 것에 있습니다. 


Q36. 무라카미씨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급진적인 이슬람은 단지 교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이슬람은 전세계의 퍼져있죠. 이들 종교들은 모두 제각기 다릅니다. 오움진리교는 새로운 종교이거나 과거로 부터 전혀 바뀌지 않은 종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면서 생기는 위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의해야해요. 그런 종교들의 기나긴 역사에 의해 시도되지 않았어요. 전 새로운 종교와 오래된 종교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Q37. 혼합물 테러는 매우 현대적인 방법이죠. 그 한 예로 UNA-boomber로 유명한 미국의 수학자이자 테러리스트인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이론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발전해서 많은 사상자를 낸 폭탄 테러까지 발전했죠. 오스트리아를 3년간 공포에 떨게한 테러리스트인 'Franz Fuchs'와 비교 되기도 하죠. 무라카미씨는 Franz Fuchs를 아시나요?


하루키: 아니오. 모르겠어요. 어떤 일이 있었죠?


Q38. 몇년전, 그는 자유와 관용의 가치를 위해 싸운 정치인과 유명인에게 폭탄 편지를 보내 4명의 목숨을 잃게 한 테러리스트에요. 체포 중에 그는 스스로 폭탄으로 그의 두 팔을 없애 버렸고, 결국 그는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하루키: 정말인가요? 흠, 천재군요.


Q39. 그런 그의 기술적인 지식 때문에 종종 시어도어 카진스키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움진리교는 꽤나 다릅니다. 그렇지 않나요? 오움진리교의 테러 방법은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사린을 봉지나 가방에 넣고 우산으로 찔러 테러를 가하는 방법이라니 믿기 힘들었습니다. 왜 기술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개별 범죄자가 각기 테러에 이용된 것일까요.


하루키: 오움진리교는 사실 완벽하지 못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구성원들은 엘리트 집단 출신이었죠. 그렇게 완전함을 주장했던 그들의 시스템에는 세부적인 오류가 많이 있었어요. 한쪽에선 대단히 눈부시고 엄청난 일을 행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진행되었죠. 예를 들어, 사린 가스를 만들었을 때, 많은 구성원들은 꽤나 놀랐죠. 자신들이 사린 가스를 만들어냈다고 기적처럼 여기고 있었던 거죠.


Q40. 무라카미씨가 오스트리아의 테러리스트를 모르고 계셨다니 다행이었습니다. 당신은 오스트리아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시나요? 비엔나에는 와 보셨나요?


하루키: 네. 가봤어요. 쇤부른 동물원을 가보고 싶었죠. (웃음) 그때 존어빙의 <곰을 풀어주다>를 번역하고 있었죠. 읽어보셨나요?


Q41. 네 그럼요.


하루키: (웃음) 저는 동물원 가는 것을 좋아해서 너무나 자연스레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죠. 


Q42. 번역하기 전에 가보셨나요?


하루키: 아니오, 번역하는 중에 갔었어요. 그 책 중에 'Pension Grillparzer(오스트리아 극작가)'를 기억하시나요? 실제로 그곳을 찾기도 했었죠.


Q43. 아 그곳이 진짜 있나요?


하루키: 네, 있습니다. (웃음) 그곳에서 3일을 묵었는걸요.


Q44. 다시 방문하신다면, 새롭게 리노베이션한 동물원을 보실 수 있을거에요. 이전에는 다소 비참한 동물원이었지만, 지금은 새롭게 많이 좋아졌답니다.


하루키: 아 정말요? 좋네요. 그리고 오스트리아에 두번째 방문했을 때는 잘쯔부르크에 머물렀어요. 아마 1990년 여름이었을 거에요.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Q45. 오스트리아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하루키: 평화롭고 조용하고, 음식이 맛있고, 음악 역시요. 음, 더 생각이 안나네요. (웃음) 그냥 이미지로서 말이에요.


Q46. 독일에서 출간된 무라카미씨의 선정적인 책 제목 번역에 대한 이슈에 대해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하루키: 네, 얘기 들었습니다.


Q47. 2~3곳의 출판사에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대한 서브타이틀로 '위험한 연인'이라는 문구를 달았는데요. 그리고 놀랍게도 일부 영어 번역본에서는 '문학 사중주의 포르노그라피'라는 표지도 보이고요. 티비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홍보를 하고 있는데요. 무라카미씨의 섹스와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요?


하루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섹스에 대해 성적인 것에 대해 씁니다. 이것은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방'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섹스는 입구의 일종입니다. 섹스 그 자체에 대해서는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찾기 힘든 내면의 디테일을 얻기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적인 것과 포르노그라피 사이에는 얇은 선이 있습니다. 저는 이 선에 대해서 매우 조심하고 있어요. 또한 매우 명확하게 그 선의 지점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묘사들이 번역되었을 때 어떻게 나올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때때로는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타날지도 모르죠. 영어 번역본은 읽어 보지만,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묘사된 것을 가끔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터키, 러시아에서 번역되는 것들은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판단할 수도 없죠.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이런 번역에 관한 논쟁이 저를 기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같은 주제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좋습니다. 유명한 독일 비평가의 자서전이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읽고 있는데, 이름이 뭐였죠?


Q48. 라이히 라니츠키요.


하루키: 맞아요. <마이 라이프>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너무 좋아요. 재밌어요. 저는 또한 그가 제 책을 좋아한다는 것에 너무 기쁩니다. 

그리고 그런 문학 비평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작년에 독일에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 얘기를 하더군요.


Q49. 무라카미씨의 소설에서 벗어난 일본의 '섹스'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어제 신주쿠의 섹스샵에 가보게되었는데, 전체적인 인상이 유럽의 그것보다 깔끔하고 나이스한 느낌이었어요.


하루키: 첫째, 일본은 섹스 산업에 있어서는 매우 전문적입니다. 1983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섹스 비지니스에 관해 무언가 쓰기 위해 사창가를 간 적이 있었죠. 그런데 그곳은 당국의 통제하에 매우 엄격히 구역이 나뉘어져 있는 모습에 놀랐던 적이 있어요. 반면 일본에서는 더 혼란스럽고 또 더 어떤면에서는 부드럽습니다. 그것은 통제되지 않는 곳이고 또한 자유 시장이라는 얘기죠. 따라서 일본에서의 섹스는 어느 정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죠. 사람들은 그곳에 쉽게 갑니다. 가는데에는 특별한 압력이나 제한 또한 없죠. 당신이 즐거움을 원한다면, 단순하게 그곳으로 가면 됩니다. 저는 섹스샵은 물론 매춘도 하지 않지만, 당신이 돈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 즐기면 되요. 매우 반기독교적인 거겠죠. 제가 생각하기에 그런 섹스에 대해 사람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모두가 알다시피 일종의 비지니스인 거죠. 사람들은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이 제공되는 곳입니다. 함부르크에 있을 때, 매춘은 뭔가 강한 죄의식을 갖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곳에 가면 사회로 부터 격리된다는 압박감 비슷한 것이었죠. 그러나 이곳은 다릅니다. 그것은 취미와 같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그곳에 가는지 가지 않는지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죠. 글세요 아마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않아서가 아닐까요. 


Q50. 무라카미씨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하루키: 저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긴 인터뷰였습니다. 인터뷰어가 오랜 시간을 들인 인터뷰라 그런지 상당한 시간을 들인 것 같네요. 기존 인터뷰에서 잘 보이지 않거나 에둘러 표현한, 정치나 종교, 섹스 등에 대한 과감한 질문들과 답변이 눈에 띄는 인터뷰였습니다.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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