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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칸느영화제에서의 수상 가능성을 조금씩 높이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5번째 영화 <시>를 자정 타임에 스크린을 혼자 독차지하며 감상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볼 수 있었고, 감독의 의도와 연기자의 심리상태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쓸 수 있었죠. 그래서 러닝타임 140분이 전혀 길지 않았답니다. ※주요 사건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놀라울 만큼 사실적이고 비극적인, 사회 약자에 대한 관조와 애정

감독의 전작인 <밀양>을 보면, 아들을 잃은 한 여자가 세상의 모든 시선과 싸웁니다. 그것은 神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 세상의 일이고, 그것을 겪고 헤쳐나가는 것도 우리 인간입니다. 이번 영화 <시>에서도 생활보호대상자인 65세 할머니 미자가, 손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스스로의 싸움을 해나갑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를 짓는 문화 강좌를 듣기 시작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기 위해 애쓰지만, 미자가 보게 되는 세상은 절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동급생을 투신케 한, 손자와 친구들의 성범죄로 인해, 추악한 현실을 맞닥뜨리다.

이런 믿기 힘든 현실 속에서 미자는 가해자 학부형들의 모임에 나가면서, 점점 추악한 현실에 시의 세상과의 괴리를 느끼며 괴로워 합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뜨겁게 만들어 준 시를 계속 쓰고 싶은 미자는 알츠하이머병를 물리치기 위해 배드민턴까지 치며 발버둥 치는데, 현실은 너무 잔인하기만 합니다.

손자를 동정하며 손자를 위해서는 '입에 밥이 들어가게' 만들면서도, 소녀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이 점점 더 커지면서 자는 손자를 새벽에 깨워 소리를 지르거나 밥상에 소녀의 사진을 올려두는 행위를 통해, 내 세상에 끼어든 지독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물리쳐 보려고 하지만, 세상은 더 추악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의 "정말 끝난 거에요?" 와 <밀양>의 "내가 용서를 안했는데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결국 합의금으로 일을 조용히 마무리 지은 학부형들이, 소주와 탕수육으로 천박한 파티를 준비하는 것을 본 미자는 "정말 끝난거에요?'"란 말을 탄식처럼 되물으며, 스스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은 사람들을 벌하고자 합니다. 오락실에 있는 손자를 데려가 피자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발톱을 깎아주고, 손자와 같이 마지막 배드민턴을 치며 마음의 준비를 하며, 슬픈 눈을 보입니다. 처음엔 아름다운 시의 세상을 영위하기 위해 배드민턴을 쳤던 미자는, 배드민턴을 포기하고 삶을 진실되게 바라보는 것 그 한가지를 택하게 되는 것이죠. 그 것은 바로 시를 남기고, 더럽고 부끄러운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마지막, 관객을 응시하는 소녀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 볼 사람이 있을까?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봉준호 감독이 박두만 형사의 시선으로 무능하고 무관심한 현 시대에 대해 일갈한 것 처럼, <시>에서도 마지막 투신하기 전 소녀가 관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속으로 삼키는 긴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곤 카메라는 소녀와 미자를 동일시 하며, 영화 시작 소녀가 투신했던 그 강물을 투영하며 끝을 맺게 됩니다.


손자를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복수를 한 미자는, 소녀에 대한 죄의식을 끝내 떨쳐 버리지 못한채 세상을 버리기전 마지막으로 '시'를 남깁니다. 이 시는 영화 마지막에 미자와 소녀의 목소리가 교차되며 낭독되는데,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것이라고 인터뷰에서도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시를 듣고 있으면 감독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긴 시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아네스는 죽은 소녀의 세례명이고, 천주교에서 말하는 순교자의 의미가 있다고 하네요.

영화 <시>, 저에게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최고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하녀>의 이슈와는 달리 상영관도 적고 관심을 덜 받고 있는데, 칸에서 수상 소식이 들려와 더 많은 분들이 <시>를 보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네스의 노래>
양미자(이창동)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입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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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정말... 2010.05.22 07:24 신고

    이 영화 너무 보고싶은데 제가 있는 영국에서도 개봉할런지 모르겠네요. 칸느에서 상 받고 여기서 개봉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 시를 읽으니 노무현 대통령님이 간절히 생각납니다...

  2. punggyeong 2010.05.31 15:27 신고

    쿨사이다님, '시' 내용 요약을 참 잘 해 주셨네요. 저는 아직 보지 못했답니다. 제가 내고 있는 오프라인 신문에 쿨사이다님 영화 내용 요약참조하고 출처로 블로그 주소 소개해 드릴께요. (6월호 지금 마감인데 영화면이 아니라 정보면에 끼워넣는 기사랍니다.) 괜찮겠죠? 오프라인 기사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 온라인에 오릅니다. 간단히 회신 주세요.^^

  3. yipress 2010.06.10 08:53 신고

    감사합니다. 제가 티스토리 사용법이 시원찮아서 지금에야 회신 합니다. 쿨사이다님 통해서 시 내용도 제대로 알 수 있었구요. 좋은 글 많이 쓰세요.